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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인들이 극찬한 하동, 산수유, 벚꽃, 매화 등 꽃길 따라 봄이 춤추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대웅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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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하동 쌍계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사찰입니다. 대한민국 명승,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입니다. 인근의 섬진강과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길에 피어있는 벚꽃들이 매우 유명하여 벚꽃 피는 봄철에는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신라 성덕왕 22년(724) 대비와 산법 두 화상께서 선종의 6대조이신 혜능 스님의 정상(머리) 사리를 모시고 귀국합니다. 지리산에 눈 쌓인 계곡 중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 뒤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해수 진감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를 널리 보급하시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국보인 진감선사탑비와 보물 9점, 국가지정과 지방지정 문화재를 포함하여 총 30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산문화재 외에도 쌍계사 자체도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변 일대가 본래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을 날려 오던 것이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고, 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22년 11월 11일에 근처의 불일폭포까지 함께 포함하여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편, 문화재처럼 생겼으나 아닌 것도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 올라오면 팔영루 앞에 월정사의 9층 석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9층 석탑이 하나 있는데 1990년에 만든 것입니다. 이 탑에는 쌍계사 방장을 지낸 고산이 인도와 스리랑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 쌍계사의 암자 중 하나인 국사암의 진신사리 2과, 그리고 불상을 함께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웅전 뒤에는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2007년에 만든 것입니다. 이 금강계단은 농심그룹 신춘호 일가가 시주하였습니다.
두 계곡의 물이 절 입구에서 만나므로 쌍계사라는 이름을 신라 정강왕으로부터 하사받았으며 입구에는 두 개의 바위에 쌍계성문이라고 적힌 최치원의 글씨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일주문 앞에 서면 김규진의 글씨인 삼신산쌍계사의 현판이 있습니다. 지리산 쌍계사인데 삼신산쌍계사라고 하는 것은 삼신산이란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의 통칭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과 천왕문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나라연금강과 문수동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합니다. 머리에 상투를 올리고 꽉 다문 입술과 목에 나타난 근육과 주먹을 뻗은 오른손은 마음껏 힘을 과시하는 듯합니다. 나라연금강 뒤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의 얼굴이 경건함을 주고 있으며 용맹스러운 사자의 웃는 모습이 약간은 멍청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나갈 때는 보현동자와 밀적금강을 마주하게 됩니다. 보현동자의 미소가 마치 부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가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아갈 때 코끼리의 얼굴을 먼저 보이도록 한 것은 보현행원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밀적금강도 웃으면서 배웅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천왕 가는 길에 계곡 물소리가 시원합니다. 물소리를 들으며 천왕문에 이르게 됩니다. 네 명의 천왕이 큰 눈을 부라리며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사천왕은 근엄하고 태연한 척 하지만 발아래에는 관리와 도깨비와 도적 등의 생명좌들을 벌주고 있습니다.
진감선사탑비
팔령루 앞에는 보물이 있습니다.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는 쌍계사 최고 가치인 진감선사탑비가 마당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통일신라 후기 양식으로 거북 받침돌의 머리는 용머리로 되어 있으며 등에는 육각형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887년 신라 정강왕의 지시로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총 2,423의 글자 속에는 진감선사의 선조가 당나라에서 귀화한 이야기와 태어날 때 울지 않은 비범성 왕이 불러도 거절하고 수도 정진에만 몰두하자 왕이 부끄러워 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부처와 공자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탑비는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하나로 더욱 유명합니다. 사산비명에는 4개의 사찰에 대하여 왕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에게 명하여 남긴 최고의 문장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 후기까지 최치원이 거처했던 학사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웅전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840년인 신라 문성왕 때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인조 10년(1632) 이후부터 여러 차례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을 모시고 좌우에는 보현보살 등 네 분의 협시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 도력과 법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가람의 본전입니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일컫는 것으로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큰 바위에 불상을 두꺼운 돋을새김으로 새기고 불상 둘레를 깊이 파내어, 불상을 작은 방에 모셔 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머리가 크고 얼굴에 살집이 많으며 귀가 어깨까지 처진 모습이 자비로워 보인다. 손은 옷으로 덮여 있으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님이라기보다는 스님처럼 보이는 특이한 약사여래불입니다.